[로컬 라이프][예술가의 사무실 : Work & Art 작가 인터뷰] '삶 속에 편히 녹아든 일과 오피스를 꿈꾸며' 그레이 피스 강유진 작가

202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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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을 보면 여전히 정형화된 사무실과 업무 형태, 근무 복장이 있어요. '2021년에도 보수적으로 일과 직장을 바라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변화의 가능성이 보여 기쁘기도 해요"

지난 9일 공유 오피스 파도살롱에서 만난 강유진 작가는 사무실에 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팬데믹으로 재택근무, 원격근무가 활성화됐지만, 여전히 사무실이라는 압박으로 가득한 공간에서, 눈에 보이는 활동을 하길 원하는 회사가 많은 게 현실입니다. 그레이 피스 대표이자 새로운 사무공간을 구상하는 강 작가는 '사무실도 사람 사는 공간'이라며 의식주와 업무, 편안함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예술활동, 일 외에 작가가 말하는 자신의 해시태그

#ENTP #Dreamer_몽상가 #1+1=3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야외에서 일하는 것을 꿈꿉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모습입니다. 작가님은 이를 어떻게 구현하고 있나요?

사무실 안이나 밖이나 일할 때는 불편함이 적어야 합니다. 작업, 일 모두 일상에서 습관처럼 작용하는 활동이고, 공간도 그렇게 구성된 경우가 많죠. 야외에서 개인이 자신만의 공간을 조성할 때도 상황은 비슷해요. 설치와 철거가 쉬워야 하고 이동도 편해야 하죠. 그리고 복잡한 기능과 장비보다 가장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실용성을 우선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어요. 여러 차례 현장 테스트를 하면서 프로토타입으로 구성했던 '피스 락(Piece Rock)' 역시 테이블과 의자가 중심이 된 간결한 세트로 구성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리는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업무와 여가를 동시에 충족하는 '워케이션'의 목적 중 하나가 '자연을 즐기면서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는 것'에 있기에 자연에 스며들 수 있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회색(Gray)'이라고 하면 도심의 빌딩 숲을 떠올리기 쉽지만, 동시에 바닷가에 있는 바위의 빛깔도 그레이거든요. 중의적인 느낌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나서 모듈을 구성하는 색으로 정했습니다. 자연이 주는 회색은 충분히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봤어요. 바닷가 근처 바위에 걸터앉아 있으면 자연스레 먼바다를 바라보게 됩니다. 피스 락에서 일하는 와중에 고개를 들고 바다를 보며 바람을 맞이하는 모습, 제가 생각하는 그림이에요.

 

 

'단순하면서도 필요한'이라는 말이 인상 깊네요. 아까 말한 그림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중요한 건 역시 라이프 스타일입니다. 일도 삶의 일부고,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부분도 큽니다. 사무실, 오피스는 단순히 일하는 공간으로서의 사무실이 아니라 의식주, 비즈니스, 휴식이 혼용된 장소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신경을 썼지만, 지금은 일과 삶을 적절하게 섞는 '워라블(Work-life Blending)'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해본 사람들은 한 번쯤 느꼈을 거예요. 편한 옷차림으로 있다가 갑자기 화상회의를 한다고 하면 헐레벌떡 웃옷을 걸칩니다. 부스스한 머리와 얼굴까지 금세 감추기는 쉽지 않죠. 화면에 너무 어둡게 잡힌다면 자다 일어난 거로 오해받기 쉬우니 조명도 밝게 켜야 합니다. 프리랜서나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일하는 공간과 작업 공간, 휴식 공간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어딜 가서 따로 쉬는 것도 여의치 않아요. 결국, 그 안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자연스러운 구조와 조건을 갖춘 홈 오피스로의 변화가 빨라지는 이유기도 합니다.

 

 

서울과 강릉을 오가며 리모트 워커로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편한 리모트 워크를 위한 팁을 주신다면?

KTX에 앉아 급하게 파일을 보낼 때도 있고, 거래처 사무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으실 거에요. 어두운 곳에서는 핸드폰 불빛을 켜고서 일을 이어가야 하고, 출장 가서 동료는 일이 끝나서 쉬는데 혼자 하는 경우, 식사 시간 쪼개서 중요한 서류를 보내기도 하죠. 업무의 형태는 이미 이렇게 다양하고 더 많은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데, 사무실이나 외부에서 일하는 공간의 형태는 여전히 우리가 생각하는 그 모습 그대로 있습니다.

전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제자신이 테스트 대상이자 작품 의뢰를 맡기는 클라이언트가 되는 거죠. 저 같은 경우, 리모트 워크에서 노트북과 스마트폰이 필수라서 이동의 편의성과 편리한 전기 수급에 신경 쓰는 편이에요.

이동의 편의성 측면에서는 이미 노트북을 들고 다니는 것 자체에서 체력소모가 많이 되어, 그 외 소지품은 최소화화려고 늘 노력합니다. 짐이 많으면 쉽게 지치고 이동할 때 챙기는 걸 깜박하고 자주 흘리거든요. 저는 가방 안에 다양한 크기의 파우치를 활용해서 소지품을 용도에 따라 분리해놓는 편이에요. 소지품은 형태가 단순하면서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부피는 작고 무게는 가벼운 제품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서울에서는 지하철역 안에 물품보관소가 많아서 부득이하게 많은 짐을 갖고 다녀야 할 때, 동선을 생각하면서 틈틈이 이용하는 편입니다.

전기 수급에 있어서는 강릉과 서울을 오갈 때 KTX를 이용하는 편이에요. 이동하면서도 업무를 볼 수 있는 환경이 다른 교통수단보다 잘 갖춰져 있거든요. 지역 출장에서는 콘센트 사용이 편리한 카페들을 찾아보고 잘 활용하는 편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분들도 각자 상황에 맞는 용품과 모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요한 작가는 각종 영상장비를 올려둘 수 있는 거치대가 필수일 거고, 김소영 작가는 화선지와 붓을 둘 책상이, 정언호 작가는 노트북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판과 같은 도구가 놓일 공간이 필요할 겁니다. '움직이는 사무공간'을 구성하고 구현할 수 있도록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워낙 바쁘게 서울과 강릉을 오가시니 일과 휴식을 구분하기 어려울 거 같습니다.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할 때는 그 업무에 따라 CEO도 되고, 디렉터가 되기도 하며, 크리에이터로 변하기도 합니다. 다른 역할일 때도 환기를 시키고 아이디어를 얻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작가, 크리에이터로 생각할 때는 더 많은 영감과 자극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명상을 합니다. 쉼의 역할에 충실한 '마음챙김(Mindfullness)'을 스스로 하면서 작품 구상이나 아이디어를 떠올리는데 활용하고 있어요. 오랜 시간 명상하지 않더라도 잠깐 크게 호흡을 들이마신다든지, LP 플레이어에 LP판을 올려두고 노이즈부터 노래, 그리고 그 노래가 끝날 때까지 온전히 집중하는 연습을 하는 모든 과정이 일하고 힘든 와중에도 저를 챙기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가끔은 쓸데없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떠올릴 때도 있는데 마음에 집중하고 나면 더 많은, 더 기발하고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아이디어 모으기에도 좋습니다.

 

 

강릉에 오게 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대학에서 디지털아트를 전공하고 서울에서 뉴미디어 기획자로 신기술을 접목한 아트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계속해왔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강릉의 '더웨이브컴퍼니'와 인연이 되어 로컬 지역의 공간 프로젝트들을 함께 했습니다.

강릉에 와서 가장 신기하고 긍정적으로 보였던 부분은 건강한 가치관을 지닌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점이었어요. 가끔 지역으로 출장 가면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나 경륜이 많은 분과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배우는 것도 많고 각 지역의 특색있는 모습에 힐링도 하지만, '여기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아요. 반면 강릉은 서울의 성수동처럼 여유를 즐기려는 실력 있는 예술가들이 많아서 그런지 함께 이야기하면 여기서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사무를 보는 방'이 사무실이 아니라 이들처럼 자유롭게 '사유하고 업무를 보는 공간'이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개념의 사무실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해외의 워케이션, 일을 꾸려가는 새로운 모습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강릉이 해외의 여러 도시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터넷을 비롯한 편리하고 스마트한 디지털 시스템에 자연이 잘 연결되면 휴식과 일을 함께하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카페인이 아닌 향기를 마시는 커피, 억지로 정신을 차리려고 걷는 산책이 아니라 숲과 바다, 호수를 즐기는 발걸음은 이 도시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글 = 변준수

사진 = 진명근(Workroom033) 

장소 = 파도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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