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라이프][예술가의 사무실 : Work & Art 작가 인터뷰] '편안함 속에 스며든 역동성' 일러스트 작가 정언호

2021-12-15
조회수 863

 

정언호 작가를 처음 만난 건 더웨이브컴퍼니에서 주관하는 2021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 '강릉살자'에서입니다. '덤덤'이라는 별칭으로 멤버들에게 불리던 정 작가의 첫인상은 '듬직하다', '부드럽다', '역동적이다' 였습니다. 정언호 작가의 부드러운 외모와 듬직한 체격, 서핑보드를 타고 바다를 가르는 모습은 수면 위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웃음 짓는 돌고래를 닮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그림, 일러스트에서도 편안하고 특별한, 작가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난 9일 오전 송정 해변 근처에서 이뤄진 인터뷰 역시 스며들 듯 밀려오는 파도처럼 부드럽고 편안하게 진행됐습니다.

 

 

예술활동, 일 외에 작가가 말하는 자신의 해시태그

#자유 #얽매이지_않은 #그럼에도_현실적인



'편안하다', '부드럽다'라는 작품 평가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언호 작가(이하 '언호') : 저는 제 그림을 보는 분들이 편안함을 느끼길 바랍니다. 일러스트 작품 가운데 그로테스크한 그림, 예술적으로 완성도가 뛰어나지만, 몰입에 힘을 써야 하는 그림을 종종 만나곤 합니다. 기술적으로, 예술적으로 좋은 작품들이지만 개인적으로 작품을 바라볼 때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편안하게 감상하고 온전히 즐기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했고 지금의 스타일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제 그림을 바라보는 두 분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림체나 스타일이 좋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제가 그리는 주제, MZ세대의 취향이 마음에 든다는 분들도 있어요. 그림체,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제 작품처럼 부드럽고 마음이 둥근 느낌이 듭니다. 주제가 좋다고 하시는 분들은 서핑, 캠핑, 스케이팅 등 역동적인 활동과 이를 그림에 담는 걸 좋아하세요. 그만큼 그분들도 활동적이시고요. 저는 이 두 가지를 담으려고 했고 사람들이 느끼고 있으니 그림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작가 정언호와 평범한 청년이자 서핑하는 정언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가요?

언호 : 한동안 프리랜서 생활을 이어오면서 일과 휴식을 구분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일부러 두 가지를 떼어내려고도 했고요. 어느 순간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고, 일할 때는 일을, 쉴 때는 쉼에 집중하면서 물 흐르듯이 시간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쉼, 작업 모두 스스로 만족할만한 것이기에 이 모든 걸 자연스러운 하나의 흐름과 양식으로 가져가려고 합니다. 일하다가 파도가 좋으면 보드를 들고 바다로 뛰어들면 그만이죠. 지나고 보면 즐겁고 힘들었던 모든 기억이 하나의 추억으로 남듯이 삶은 누구에게나 하나로 이어지니까요.



의뢰를 완성하거나 작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에 했던 나이키와의 작업은 제가 그리고 싶은 부분을 모두 반영하지 못한 건 조금 아쉬웠지만,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와 협업했다는 사실 자체로 만족스러웠습니다. 평소 꾸준히 그려온 '방구석 여행' 시리즈를 원더 플레이스와 함께 했을 적에는 주제, 완성도, 결과 모두 만족스러웠어요. 예술도 결국...예술이라고 말하기에 조금 민망해요. 전 상업적인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림을 그리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고,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상업성이 기저에 깔릴 수밖에 없죠. 지금은 그림의 가치, 예술적, 그리고 작가 개인의 가치 평가 기준이 돈이니까요.

그렇다고 요청하는 대로만 그려내기만 하면 그건 일러스트 찍어내는 공장에 불과하게 됩니다. 나의 강점과 특수성을 갈고 닦아야 저의 가치, 그리고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학부 시절부터 인체 드로잉, 누드 크로키를 좋아하고 지금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일러스트를 하면서도 다른 그림, 기본이 될만한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순간을 잡아내는 크로키나 신체의 아름다움과 역동성을 분석할 수 있는 인체 드로잉을 꾸준히 해온 덕에 제 그림을 보고 '에너지가 느껴진다'라고 평가해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람의 몸을 보고 느끼고, 그리다보니 어느 순간, 제 몸도 디자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로스핏을 4년 정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숨도 못 쉴 정도로 힘들었지만, 혼자 하기 힘든 운동을 트레이너와 옆에서 함께 운동하는 분들과 하다보니 제 몸도, 건강도 모두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림이 제 생활 속에 이미 깊숙이 들어오게 된거죠.

여러 작업을 병행하면서 기본과 변화, 정해진 규칙과 이를 깨면서 제 영역을 확장하는 작업을 지속해왔고, 이 부분이 저만의 특별함을 만들어내는 이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지금의 그림체가 조금씩 변한 것도 이런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물입니다.

 

 

예술가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바라보는 강릉은 어떤 느낌인가요?

언호 : 전 다른 작가님들과 달리 '강릉살자'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여기에 왔습니다. 사실 친구들이 없더라도 여기에 올 생각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친구들, 커뮤니티 없이 여기서 버틸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강릉살자 1기를 진행하면서 엘리라는 별칭을 쓰는 친구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덤덤(정언호 작가 별명)은 1기 친구들이 아무도 안 남아도 강릉에서 일하거나 남아 있을 거야?"

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상과 현실, 두 가지 이유를 좇아 이곳에 왔는데 정작 저를 이 도시에 머물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친구들이었어요. 인간관계가 삶에 있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일러스트 작가이자, 프리랜서 작가로서 사무실과 공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언호 : 예전부터 집이나 사무실처럼 정해진 공간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걸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제게 있어 작업실은 지금 들고 있는 저 가방이에요. 가방 안에 그림을 그릴 맥북과 아이패드가 있고 그 두 가지만 있다면 어디서 일하든 제 작업 공간이거든요. 아. 물론 맥북과 아이패드를 놓을 수 있는 테이블은 필요합니다. 카페, 공유 오피스, 사무실, 스튜디오 등 다 좋습니다, 채광이 잘 된다면 만족하면서 일하고 있어요.

사무실뿐만 아니라 강릉도 제게는 이상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 '서울은 집값이 너무 비싸서 반지하나 옥탑방 말고는 집구하기가 어렵다', '조금이라도 윤택하게 살고 싶다'라는 현실적인 바람이 저를 이곳으로 이끌기도 했지만, 강릉 자체가 좋았습니다. 앞서 얘기했듯이 바다를 좋아하고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낙원이에요. 언제든지 바다와 닿을 수 있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바다에서 바라보는 육지의 모습도 좋아합니다. KTX를 타고 서울에 가서 비즈니스를 진행하기도 쉬워요. 기차에서 작업하는 것도 편하고요.



글 = 변준수

사진 = 진명근(Workroom033) 

장소 = 팝업스토어

우리와 함께하고 싶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