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Nilda] 김하은·백나영 디자이너에게 듣는 '닐다' 이야기 (下)

20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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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더웨이브컴퍼니는 2020년 사업 방향을 구상하는 워크숍에서 '로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브랜드를 만드는 일도, 제품을 디자인하는 일도 모두에겐 처음이어서 함께 모험하는 마음으로 '브랜드팀'을 꾸려 험난하고 지난한 아이디에이션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렇게 '닐다Nilda'가 태어났습니다(닐다의 탄생기는 여기에서 자세히 읽을 수 있어요). 지난 6월 노트, 포스터, 컵 등으로 구성된 챕터(Chapter) 1을 선보이며 닐다 이야기의 첫 장을 펼쳤습니다. 이어 챕터 2에서는 '파도(Wave)'를 모티프로 만든 그래픽 티셔츠를, 챕터 3에서는 '강원의 산'에서 영감을 얻은 가방을 출시했어요. 챕터 1에서 챕터 3에 이르는 여정은 첩첩산중, 우여곡절, 망연자실, 진퇴양난, (그러나) 대기만성(!) 등으로 요약됩니다. 올 한해 닐다를 키우느라 고군분투한 닐다맘 - 김하은·백나영 디자이너에게 챕터 1, 2, 3의 행간에 담기지 않은 뒷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지난 6월, 닐다 챕터 1 출시 직후 진행했던 인터뷰 중. 왼쪽부터 백나영·김하은 디자이너. ⓒ진명근 


― 지난 6월, 닐다의 챕터 1이 막 출시됐을 때 두 사람과 닐다가 어떤 브랜드, 어떤 아이인지 소개하는 인터뷰를 했던 게 벌써 반년 전 일이 됐다. 당시 두 사람은 챕터 1을 내놓자마자 숨 돌릴 틈도 없이 챕터 2를 준비하던 상황이었다. 가물가물하겠지만(웃음), 기억을 되살려서 챕터 2 기획 과정을 떠올려보자.


나영= 챕터 1 제품 출시 마무리 단계에서 왠지 '반응이 썩 안 좋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챕터 1은 우리가 만든 그래픽을 머그잔이나 유리컵 같은 기성 제품에 얹는 식으로 작업했는데, '이게 과연 팔릴까?' 하고 계속 의문이 들었다. 하은과 나는 그래픽 디자이너이고, 주로 지류(紙類)에 그래픽 패턴을 인쇄하는 작업을 해왔다. 지류 디자인 작업은 모니터로 본 결과물과 실제 결과물 사이의 간극이 그리 크지 않아서 실제 제작물의 퀄리티와 스케일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컵 같은 3D 물체에 그래픽을 얹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그래서 작업을 하면서도 계속 불안했고, 내가 만드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논리를 구축할 수 없었다. 제품과 '둥기둥기'하는 시간이 없었던 게 큰 문제였다고 본다. 이제는 이렇게 무엇이 문제였는지 진단이라도 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뭐가 뭔지 몰라서 더 힘들었다. 

디자이너 스스로도 제품에 확신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챕터 1의 방향을 이어 가는 것보다는 전혀 다른 시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 내부에서도 챕터 1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챕터 2를 진행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가장 큰 변화는 색종이를 오려 붙여 이미지를 생산하던 챕터 1의 그래픽 작업 방식을 포기한 거다.


하은= 색종이 그래픽 작업에 디자이너의 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는 내부 의견이 있었다. 챕터 1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했기 때문에 닐다 프로젝트를 좀 더 '린(lean)'하게, 즉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시장에 출시해 반응을 보고 이를 프로덕트에 반영하는 식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쪽에 힘이 실렸다. 결국 나영과 논의 끝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아날로그적 작업 방식을 배제하고 챕터 2의 그래픽을 만들기로 했다. 


닐다 챕터 1 그래픽 작업 일부.


하은= 챕터 2를 준비할 때가 초여름이었는데, 팀에서 '챕터 2 아이템은 계절감을 반영해보자'고 의견을 모았고 그렇게 '티셔츠'를 만들게 됐다. 티셔츠를 '린'하게 제작하기 위해 나영과 내가 만든 그래픽을 무지 티셔츠에 날염(捺染)하는 방식을 택했다. 또 시장 반응을 빠르게 보려고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품을 홍보·판매하기로 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그래픽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아날로그적 수작업을 없앴음에도, 펀딩 참여자들이 한창 반소매 티셔츠를 즐겨 입을 시점에 닐다 티셔츠를 받아볼 수 있게 하려면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에 그래픽 6종을 완성해야 했다. 나영과 내가 서로 충분히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주고받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마치 도화지 6장을 나영과 내가 각각 3장씩 나눠 갖고 각자 그리고 싶은 걸 그리는 식으로 그래픽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나영의 시너지는 지난하고 치열한 대화의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물리적으로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이 굉장히 안타깝다.


나영= 닐다는 처음부터 제품, 그래픽 그리고 스토리가 어우러져야 의미를 갖는 브랜드로 설계됐다. 그래서 챕터 1을 준비할 땐 하은이 닐다에 빙의해 챕터 1의 무드와 내러티브에 맞는 글을 썼는데, 챕터 2에서는 따로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다행히 하은의 일기 중에 파도를 주제로 한 글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것들을 기반으로 그래픽을 작업하기로 했다.  


하은= 파도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소재이고 언젠가 꼭 파도를 주제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싶었다. 한편 닐다 프로젝트에서는 파도가 아니라 '해변(beach)'을 주제로 작업하고 싶었다. 닐다란 캐릭터에겐 '장소성'이 굉장히 중요해서, 그냥 '파도' 자체를 소재로 삼기보다 '해변에서 보는 파도'를 다루는 게 맥락에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닐다 챕터 2 'Nilda on the Waves'.


― 두 사람 다 챕터 2에 아쉬움이 많은 것 같다.


나영= 챕터 2를 기획하고 진행하던 때가 닐다 프로젝트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 마음은 조급한데 자신은 없었고, 그렇다 보니 마음에 드는 그래픽 작업물이 나오지 않았다. 파도란 소재로 충분히 재미있고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움이 크다.  


하은= 디자이너로서 내 작업이 잘 됐는지 아닌지,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그 작업을 보는 거다. 작업 당시엔 기한에 맞춰 끝내야 해서 어느 순간엔 '죽이 되든 밥이 되는 일단 끝내고 보자'는 마음으로,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지점에서 마무리 짓는다. 따라서 작업 직후엔 이 작업이 좋은지 어떤지 잘 분간이 안 간다. 오히려 한 달, 일 년이 지난 후에 다시 그 작업을 보면 디자인 문법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눈에 거슬리는 건 없는지 등이 보인다. 그리고 대체로 작업 과정에서 충분히 고민하고 시간을 들인 것들이 나중에 봐도 괜찮더라.


나영= 닐다 챕터 2는 … 우리 둘 사이에선 거의 금기어다. 우리 둘 다 열심히 작업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자랑스럽게 내 작업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은= 제품 브랜드라면 시장에 내놓고 사람들에게 판매할 물건을 만든다는 책임감을 갖고 '쓸만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애플리케이션 같은 IT 프로덕트를 개발하는 데는 '린'한 방식이 적용될 수 있지만 닐다 챕터 1, 2의 컵, 티셔츠 같은 3D 제품은 무엇을 어떻게 만들든 완제품인 채로 세상 빛을 보게 되는 데다가, 제작을 위한 최소 수량이 그대로 재고가 되기 때문에 '린'한 시도를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나영= 혹은 샘플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공방이 있어야 할 거다(웃음). 제품 샘플을 빠르게, 많이, 여러 번 만들어볼 수 있다면 컵이나 티셔츠 같은 제품도 '린'하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 샘플을 마음껏 만들어볼 수 있는 작업 환경을 마련해주는 회사가 얼마나 되겠나. 여담인데, 챕터 2 티셔츠 만들 때 내가 만든 그래픽이 티셔츠에 얹힌 모습이 어떨지, 그걸 실제로 사람이 입으면 어떤 모양일지 감이 영 안 와서 종이에 그래픽을 인쇄한 다음 그 종이를 오려서 티셔츠에 붙여보기도 했다.



―두 사람에게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린 챕터 2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이제 막 공개된 챕터, '산산백(SANSAN bag)' 이야기를 해보자. 우선, 왜 가방인가.


나영= 사실 더웨이브컴퍼니에서 로컬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제품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을 때 - 아직 '닐다'란 이름조차 지어지지 않았을 때부터 첫 아이템으로 '가방'을 생각했다. 해변에 들고 가기 좋은, 모래도 덜 묻고 물에도 잘 안 젖는 가방. 신발도 넣을 수 있고, 돗자리도 넣을 수 있는 가방. 해변에서 특히 쓸모있는 가방. 시중의 가방에 그래픽만 얹는 식이 아니라 새로운 기능을 고려해 가방 자체를 디자인하고 직접 제작하기로 했고, 나는 열심히 가방 스케치를 하고 하은은 브랜딩에 주력했다. '거닐다', '노닐다'란 단어에서 파생한 '닐다'라는 브랜드 이름에도 '가방'이란 아이템의 특성, 즉 들고 돌아다닌다는 특성이 반영됐다. 

직접 동대문시장에 가서 원단과 가방 부자재를 살펴봤고, 어렵게 구한 재봉틀로 1차 샘플도 만들었다. 그때가 3월이었다. 속도는 느렸지만 차근차근 필요한 작업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정했을 때 예상했던 일정보다 시제품 출시 시점이 너무 늦어져 버렸다. 시장에 내놓을 만한 가방을 완성하려면 적어도 2개월은 더 필요했다. 또 시간이 문제였던 거다. 결국 가방 작업은 잠정중단하고 좀 더 빠르게 제품을 내놓을 방법을 찾게 됐다. 그렇게 챕터 1, 챕터 2가 나왔고 ….


닐다가 막 태동되던 시기 작성했던 브랜드 노트 中 가방과 돗자리가 합쳐진 '닐다백' 아이디어 스케치.


나영= 챕터 2 이후에 닐다 팀은 절반 규모로 축소됐다. 하은은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게 됐고, 나와 기획자 한 사람만 남았다. 나는 올 초 중단했던 가방을 다시 꺼내 들었다. 물론 원안대로 해변에서 물 놀이할 때 요긴한 가방이란 콘셉트는 시기상 맞지 않았다. 이미 여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내가 가방을 만들어봤고, 자재들을 봤고, 원단을 만져봤기 때문에 다른 제품을 새롭게 시도하느니 가방을 다시 만드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것 같았다. 적어도 가방은 내가 '알고 있는' 제품이었다.


처음에 떠올린 아이디어는 '채집'이었다. 어릴 적 여름마다 방학 숙제인 '곤충 채집'을 하러 갈 때 목에 걸고 다녔던 네모난 채집통을 떠올렸다. 형광 플라스틱 몸체에, 앞쪽으로 사각형 투명 창이 달린 채집통. 그러나 채집통을 모티프로 한 가방 디자인을 두고 기획자와 이견 조율이 안 됐다(웃음). 주변에서도 고객층이 너무 좁을 것 같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른 아이디어를 찾고 있을 때 하은이 넌지시 '산'이란 소재를 던져줬고, 나와 기획자 모두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챕터 3의 주제가 '산'으로 정해졌고, 겨울에 가방이 출시될 것을 고려해 '겨울 산', '겨울 산의 풍경'을 모티프로 삼고서 가방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닐다 챕터 3 '산산백SANSAN bag'. ⓒ김요한


나영= 이번엔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가방 전문 제작 업체인 '테러블 스튜디오'로부터 컨설팅을 받았고, 다행히 소통이 잘 됐다. 테러블 스튜디오의 피드백을 거치며 가방 기획이나 디자인이 전반적으로 수정됐다. 최종적으로는 우리 눈에 보이는 산 풍경에서 고정된 것들은 가방에 담고, 흔들리거나 흘러가는 것들은 키링 같은 액세서리 형태로 구현해 가방에 달기로 했다.    

나는 제품 디자이너가 아니라 제품을 만들게 된 그래픽 디자이너이다 보니, 산산백을 기획하면서도 계속 그래픽을 가방에 녹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래픽을 디자인해서 그걸 가방에 녹이려는 시도 자체가 오히려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 데 방해 요소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의 자아를 내려놓으려고 노력했다. 산 능선의 곡률(曲率)에 집착하기보다 원단, 제품 구조에 집중했다. 


하은= 챕터 1은 김하은·백나영이란 그래픽 디자이너의 최대 강점을 살려 둘이서 구축한 디자인 논리와 전략에 맞춰 그래픽을 생산하는 작업이었고, 챕터 2도 챕터 1보다는 저차원이지만 어쨌든 그래픽 중심의 작업이었다. 한편 챕터 3에서 나영은 그래픽 디자인 작업이라 할 만한 걸 거의 하지 않았다. 아주 큰 도전을 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나영 디자이너는 재봉틀을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나영= 아무리 가방 업체의 컨설팅을 받더라도 내가 가방을 알지 않으면 제대로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재봉질을 직접 해봐야, 어느 부분에 박음질이 어떻게 들어가면 좋을지 이야기할 수 있지 않나. 직접 손으로 가방을 만들어봐야 포착할 수 있는 디테일들이 있다. 실제로도 직접 재봉틀로 목업을 만들어본 다음 테러블스튜디오 측에 수정 사항을 요청하고 다시 샘플을 받아보니, 결과물 만족도가 훨씬 높았다. 욕심 같아서는 내가 시제품에 준하는 샘플을 재봉틀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되었을 때 제품을 출시하면 좋겠지만(웃음). 만듦새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역시 손으로 직접 그 제품을 만져보고 만들어보며 구조와 특성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손으로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나영 디자이너의 작업 모습.


―숨 가쁘게 챕터 1, 2, 3까지 달려왔다. 챕터 4도 있나.


하은= 나는 챕터 2 이후 닐다 프로젝트에서 빠지게 됐지만, 만약 다시 나영과 둘이 챕터 4를 하게 된다면 - 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챕터 1, 2를 기획하며 둘 다 나름대로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제품을 개발하는 노하우랄까, 가이드라인 같은 게 생겼다. 적어도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최소 요건이 무엇인지는 파악했다고 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닐다가 어떤 브랜드인지, 어떤 방식으로 닐다란 브랜드를 전개해나가야 하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닐다를 이해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닐다란 브랜드의 최대 약점이다. 그러나 닐다를 기획하고 디자인한 사람으로서 만약 사람들이 오직 닐다 제품의 '룩(look)'만 보고 반응한다면, 오히려 그게 더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의도대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지 못한 셈이니까. 


나영= 우리가 설득을 못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닐다는 첫눈에 즉각적으로 이해되는 브랜드는 아니라서, 복잡하고 막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픽-제품-스토리란 3요소로 전개되는 닐다의 방식이 난해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의 반응을 얻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있다. 하지만 즉각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브랜드라고 전부 성공하는 건 아니지 않나. 오히려 하나의 브랜드가 성공하려면 멀리 내다보고서 브랜드 철학과 의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뚝심이 필요하다고 본다. 심오하면 심오한 대로, 쉬우면 쉬운 대로. 이렇게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생각이 없다면 브랜드를 만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브랜드를 10년 동안 운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알더라도, 앞으로 10년은 이것만 하겠다는 마음으로, 마치 100년 뒤에도 살아서 계속 이 브랜드를 이끌어갈 것 같은 마음으로 해도 성공할까, 말까다.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브랜드들도 이런 태도로 지금 자리에 왔다고 생각한다. 

 

하은= 돌이켜보면 챕터 1, 2 모두 '제품 디자이너'로서의 태도로 작업하진 않았던 것 같다. 학교 수업으로 빗대자면 산업 디자인과 수업을 들었다기보다 시각 디자인과 수업 중에 그래픽이 물성(物性)을 얻는 워크숍에 참여했다고나 할까. 제품을 이해하게 됐다기보다, 그래픽이 프로덕트로 이행하는 가능성을 엿봤다 - 그 정도다.

그럼에도 닐다 프로젝트 안이든 밖이든, 그래픽 디자인의 논리로 제품을 만들어보는 작업을 좀 더 해보고 싶다. 다음엔 더 많은 사람에게 소구하고, 더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브랜드 언어를 구축하고 싶다. 


―닐다란 브랜드를 키우며 겪은 고생이 절절히 느껴지는 인터뷰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영= 힘들었지만, 어떤 한 가지 콘셉트, 아이템에 집중해 탐구하는 과정은 유익했다. 배운 것도 많다. 그중 하나가 디자이너가 얼마나 깊이 생각하느냐가 결과물에 바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가방 스트랩에 신경을 좀 못 쓰면, 스트랩이 엉망진창인 상태로 샘플이 만들어진다. 내가 신경 쓰지 못한 부분이 괜찮게 나오면 그건 순전 '운'인 거다.

브랜딩에 관해서도 많이 배웠다. 사람들이 반응하는 브랜드를 만들려면 내 취향과 관계없이 사람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주시하고 유행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특히 유행을 선도하거나 만들어갈 업력과 역량이 없는 브랜드라면 사람들의 취향을 빠르게 읽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디자이너 또는 기획자의 취향이 반영될 때 '우리 브랜드'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은= 요즘 그래픽 디자이너의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나와 나영은 4년 동안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고,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 학문으로 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종종 사람들은 디자이너의 전문성을 '취향'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곤 한다. 글쓰기의 경우 '맞춤법'이란 확실한 잣대로 '비문(非文)'을 가려낼 수 있다. 그래픽 디자인도 비주얼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언어 수단이고, 글쓰기의 맞춤법에 부합하는 체계와 문법이 있다. 따라서 그래픽 디자이너도 비문에 해당하는 그래픽 언어를 쓰지 않기 위해 디자인 문법에 충실하며 작업한다. 그러나 그래픽 디자인 문법을 디자이너의 취향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때, 우리의 그래픽 디자인 지식과 전문성이 가치 절하되고,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했다는 생각에 소침해진다(웃음). 작업에 취향이 반영되지 않을 순 없지만, 취향을 기준으로 그래픽이 완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 B cut.

삶이 자리한 바로 그곳에서, 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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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행·정리= 한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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