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Nilda] 김하은·백나영 디자이너에게 듣는 '닐다' 이야기

2020-06-29

'닐다(Nilda)'는 지역을 누리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로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입니다. 지난 5월 리빙웨어 제품으로 꾸려진 '챕터 1'을 선보였고, 현재 '챕터 2' 제품을 준비하고 있어요. 

닐다는 더웨이브컴퍼니의 기획자 두 사람, 디자이너 두 사람이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디자이너 두 사람은 닐다에 완전 몰입한 '닐아일체' 상태로 작업하고 있어요(화이팅). 두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닐다는 어떤 브랜드, 어떤 아이인지 들어봤습니다. 


(왼쪽부터) '닐다'를 키우고 있는 백나영, 김하은 디자이너(a.k.a. '닐다맘') 



― '닐다'라는 이름이 정해지기까지 진통이 많았다.

하은= 대체로 브랜드를 구축할 때 주요 고객층을 대상으로 페르소나를 만든다. 그런데 우리는 고객 페르소나를 상정하는 대신 브랜드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을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브랜드 이름을 생각한다기보다 우리 머릿속에 모호하게 자리 잡은 어떤 캐릭터의 이름을 짓는 기분으로 아이디에이션을 했다.
제일 먼저 떠올린 이름은 '샌디메리(Sandymerry)'였다. '모래사장'을 뜻하는 'sand'와 '기쁨'을 뜻하는 'merry'를 조합해 만든 이름이다. 즉 '즐거운 백사장'이란 이름을 가진 아이를 상상한 거다. 그런데 팀 안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나영= 샌디메리란 이름을 들었을 때, 다양한 이미지가 자유롭게 연상되기보다는 '해변의 여자아이'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가 먼저 연상됐다. 이를테면 노란 햇볕이 내리쬐는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깅엄체크 패턴의 피크닉 매트 위에 누워 일광욕하는 여자아이의 모습. 

하은= 다음으로 생각한 이름은 '노마(Noma)'였다. 유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노마드(nomad)'에서 착안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브랜드 캐릭터는 자신이 사는 지역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서 그곳을 거점으로 여행을 떠나는 아이였기 때문에 노마드란 개념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노마'도 버렸다.

나영= 고통의 이름 짓기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하은이 갑자기 '닐다(Nilda)'란 이름을 가져왔다.

하은= 닐다는 '거닐다', '노닐다'의 어근으로 '일어나다'의 옛말이다. 의미도 우리가 생각하는 브랜드 정체성과 잘 맞았고, 단어의 품사도 동사여서 끊임없이 여행을 떠나는 브랜드 캐릭터의 습성과 잘 부합됐다. 

나영= 영어 이름 같으면서 우리말 같기도 한 어감도 마음에 들었다. 영어로 표기해도 어색하지 않고 간결했다. 그러면서 국적을 알 수 없는 신비감도 있고. 

하은= 그렇게 해서 거닐고 노니는 아이 '닐다'가 탄생했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닐다(Nilda)'



―거닐고 노니는 아이 '닐다'를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달라.

나영= 우리가 닐다를 만들 때 가장 경계하는 것이 '구체화'하는 거다. 닐다를 어떤 하나의 이미지, 특정 인물로 한정 짓지 않기 위해서다. 하은과 내 머릿속에 각자 닐다에 대한 어떤 이미지들이 있는데, 그 이미지들을 구체적인 언어나 시각 이미지로 표현하지는 않는다. 

하은= 누구나 닐다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닐다라는 아이의 이야기가 자신이 사는 곳을 거닐고 노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되길 바랐다. 닐다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닐다의 이야기, 닐다의 삶에 이입할 수 있으려면 닐다라는 아이가 하나의 구체적인 이미지로 고정돼서는 안 됐다. 

나영= 닐다를 구체화하지 않기로 하고 나니, 사람들에게 닐다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막막했다. 텍스트와 그래픽과 제품으로 닐다를 표현하고 있지만, 이 방식을 택하기까지 한참 헤맸다. 하은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건 닐다답지 않다', '이건 닐다답다' 하면서 합의점을 찾아갔다. 밀고 당기기, 더하고 덜어내기의 과정이었다(웃음).  


두 사람이 만든 닐다의 '챕터 1' 그래픽 작업 일부.



― 닐다의 '챕터 1' 그래픽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하은= 나영과 나의 그림체는 서로 많이 다르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영이 일러스트레이션 중심으로 그래픽 작업을 맡고 나는 텍스트를 쓰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는 나영의 그래픽으로 잘 구현이 안 됐다. 마찬가지로 나영이 생각하는 이미지를 내 그래픽으로 잘 구현할 수 없었을 거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그래픽 결과물이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나영= 그렇다고 해서 각자 서로 다른 그래픽을 만드는 방식은 원치 않았다. 디자이너 두 명이 돌아가면서 작업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김하은도, 백나영도 너무 드러나지 않는 그래픽 제작 방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림체와 상관없는 '색종이 오리기'란 방식을 선택했다.


색종이 오리기 실험 중.


하은= 나영과 내가 색종이를 오리고 조합하지만 그 결과물에서 딱히 백나영과 김하은이 느껴지는 건 아니어서 닐다에 딱 맞는 그래픽 제작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또 색종이 조각들의 우연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모호함을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나영= 또 하은과 그래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고민할 때, '닐다가 할 법한 행동인가'를 계속 질문했다. 닐다의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제품을 위한 그래픽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닐다에 몰입해서 닐다가 만들어낼 것 같은 결과물을 구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색종이 오리기 작업도 '워크숍'이란 이름을 붙이고 최대한 닐다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서 하은과 '닐다라면 이런 마음으로 이런 이미지를 만들겠지' 하면서 진행했다. 



―두 사람의 머릿속 이미지에서 닐다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닐다라는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데서 백나영과 김하은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두 사람의 '케미'가 중요할 것 같다.

나영= 하은과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했다. 친구 사이라서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으니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낭비가 없다.

하은= 별로 언어를 정제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엄청 많이 싸운다(웃음). 그런데 언쟁을 '이쯤에서 그만하자'하면서 끝내는 게 아니라 '그래, 이제 네 말이 이해가 됐다, 알겠다'하고 끝낸다. 

나영= 둘이 일하는 스타일도 많이 다른데, 그게 상호보완된다. 나는 '해야 하는 일'에 몰두하는 편이고 하은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한다. 하은이 해야 하는데 하기 싫어서 버린 일을 제가 주워서 한다(웃음). 

하은= 하지만 기본적인 생각 회로는 같다. 예를 들어 디자인 작업을 크게 'commissioned work(의뢰받은 작업)'와 'self-oriented work(자기주도적 작업)'으로 나눈다면 나영과 나는 후자를 선호한다. 그래서 둘 다 학생 시절에 commissioned work와 연결되는 수업은 하나도 안 들었다. 그런 두 사람이 브랜드를 만들게 된 거다(웃음). 

나영= 결국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하은과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닐다에 대한 이미지, 기대, 원칙 같은 것들을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어떤 제품이 잘 팔릴까' 하는 고민보다 '닐다는 지금 뭘 할까', '닐다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질문이 앞서 있다. 닐다라는 브랜드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결국 이런 방식이 브랜드를 더 견고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잘 팔리는 브랜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닐다'가 어떤 브랜드로 성장하길 바라나.

하은= 한 권의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에서 제품 출시 단위를 '챕터(chapter)'로 정했다. 제가 쓰는 글이 책의 텍스트가 되고 나영의 그래픽이 삽화가 되어 닐다의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한다. 이 책을 읽은 독자는 닐다의 제품이 가진 매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나영= 사람들이 닐다라는 인물이 어딘가 살아있다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우리에게 닐다의 안부를 묻고, 지금 닐다가 어디서 뭘 하는지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하은= 모든 게 만족스러운 순간, 손에 닐다 제품이 들려있다면 좋겠다. 거창한 게 아니라 스치듯 찾아오는 찰나, 햇살을 받으며 오늘 뭘 할지 생각할 때처럼 일상적인 순간 닐다가 함께 있는 거다. 

나영= 우리의 목표는 잘 팔리는 컵, 티셔츠를 만드는 게 아니다. 닐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몰입하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실제로 닐다의 이야기를 구현할 수 있게 하려고 제품을 출시한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닐다의 이야기는 텍스트와 그래픽, 그리고 제품으로 완성된다. 이 세 요소 중 하나라도 빠지면 이야기가 미완 상태로 남는 방식으로 챕터를 끌고 가고 싶다. 


차가운 우유 한 잔으로 씩씩하게 아침을 시작하는 그 순간, 닐다가 함께하길-



나영's comment

#nilda.everywhere 란 해시태그를 쓰고 있다. 로컬 브랜드로서 닐다를 기획할 때 장소성, 지역성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닐다가 강릉에 살고 있다고 설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도 논의가 길었다. 결국 닐다는 어디에 있든 자신이 밟고 서 있는 땅, 사는 동네를 잘 누리는 사람이라고 결론지었다. 서울에 있든, 강릉에 있든, 런던에 있든 닐다는 닐다인 거다. 그래서 '닐다는 어디에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아 #nilda.everywhere라는 해시태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은's comment

닐다의 첫 고객 중 한 분이 닐다 이야기에 대한 답장처럼 후기를 남겨줬다. 그 후기를 받고 꿈꿔왔던 순간이 참 빨리 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닐다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후기를 보면서 '아, 닐다는 자기와 통할 것 같은 사람이 있으면 다가가서 말도 걸고, 자신의 잡다한 비밀스러운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아이일 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닐다의 빈 부분을 이렇게 멋지게 채워주는 것, 이게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닐다 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어준 것도 고맙고, 그 이야기 밖에서의 닐다를 궁금해하며 상상해준 것도 고맙다. 정말 뜻밖의 선물이었다. 


ⓒGaeu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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